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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장례 디자이너 – 죽음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by 반짝달육 2025. 5. 20.

고인을 위한 마지막 무대를 연출하는 직업이 있다. 오늘은 ' 테마장례 디자이너 – 죽음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테마장례 디자이너 – 죽음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테마장례 디자이너 – 죽음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삶의 마지막 장면, 그 의미를 설계하다

“그분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건, 고요한 숲과 클래식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장례식장을 숲처럼 꾸미고, 쇼팽의 ‘이별의 곡’을 라이브로 연주했죠.”

장례식 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두운 조명, 검은 옷, 조용한 추모의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전통적인 장례에서 벗어나 고인의 삶과 취향을 반영한 ‘테마 장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테마장례 디자이너다.

나는 분당에 위치한 한 프리미엄 장례 서비스 업체에서 일하는 이연화(가명) 씨를 만났다. 그녀는 10년 넘게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기획해 온 국내 1세대 테마장례 전문가다.

“사람마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잖아요. 죽음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긴 너무 아쉬워요.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정리해주는 작업이에요.”

테마장례는 고인의 직업, 취미, 성격, 애창곡, 좋아한 색깔이나 음식까지 반영해 장례식의 공간과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등산을 좋아하던 고인을 위해 등산복 차림의 영정사진을 두고, 벽면엔 산의 사계절 풍경을 걸거나, 사운드로 산새 소리를 재생하는 식이다.

“가족들은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울면서도 웃어요. ‘아, 아버지랑 등산 갔던 그 느낌이다’ 하고요.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반응이에요.”

 

죽음을 기획하는 일은 삶을 이해하는 일

테마장례 디자이너의 핵심은 디자인보다 ‘기획’에 있다. 단순히 멋있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인생 서사를 한 편의 시처럼 압축해 표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장례 전 가족들과 충분한 상담을 진행한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말투를 썼는지까지도 파악한다.

“처음엔 다들 힘들어하시지만, 고인을 이야기하다 보면 웃는 장면도 나와요. 그걸 정리해서 한 편의 ‘삶의 회고록’으로 구성하죠.”

이 씨는 테마장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로,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장례를 꼽았다.
“그분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 분이었어요. 그래서 장례식장엔 아이들이 보낸 그림과 편지들을 전시하고, 고인의 책상과 교탁을 재현했죠. 장례식장은 마치 교실 같았고, 마지막 인사도 ‘차렷, 경례’로 끝났어요.”

이 일에는 감정 노동도 크다.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함께 받아들이고, 때론 울음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도 그녀는 장례식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죽음 앞에선 다 똑같다’고 하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끝까지 기억해주는 것이 진짜 배웅이라고 생각해요.”

 

‘떠나는 법’을 새로 쓰는 직업

테마장례 디자이너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직업이지만, 해외에선 점차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선 ‘세레모니 플래너’, ‘라이프 스토리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한국에도 최근 관련 협회와 자격 과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씨는 그 중심에서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이건 단순히 슬픔을 덜어주는 서비스가 아니에요. 남은 사람에게 ‘잘 떠나보냈다’는 감정을 주는, 정서적 치유예요.”

테마장례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부모님의 장례를 더 ‘개인적인 의미’로 치르고 싶어 하는 자녀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팬데믹을 거치며, 기존의 복잡한 절차보다는 작지만 따뜻한 장례를 선호하는 문화로도 바뀌는 중이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의미 없이 스쳐 가는 게 더 슬픈 일이에요. 저는 죽음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더 오래 기억하게 돕고 싶어요.”

그녀의 노트에는 지금까지 기획했던 300여 건의 장례가 기록돼 있었다. 각 장례에는 이름 대신, ‘하늘을 좋아했던 사람’, ‘자전거를 사랑한 엄마’, ‘딸을 못 보내준 아빠’라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 문장들이 장례식장의 조명과 소리, 공간을 만들어냈고, 그 공간은 누군가의 마지막 장면이자 가장 따뜻한 작별 인사가 되었다.

 

 

테마장례 디자이너는 죽음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장례는 끝이 아닌 기억의 시작일 수 있다. 남겨진 사람들이 눈물과 함께 따뜻함도 함께 품고 돌아가게 만드는 일. 그 조용한 연출이, 때로는 사람의 인생 전체를 위로한다.

고인의 이름 대신, 그 삶의 의미를 기억해주는 이들. 테마장례 디자이너는 우리 모두의 마지막을 존중하는 가장 섬세한 연출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