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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곤충학자 – 죽음의 현장에서 벌레를 만나다

by 반짝달육 2025. 5. 22.


“시체는 거짓말을 해도, 벌레는 하지 않는다”

죽음을 밝히는 가장 작은 목격자가 있다. 오늘은 ' 법의곤충학자 – 죽음의 현장에서 벌레를 만나다'를 말씀드리려고 한다.

법의곤충학자 – 죽음의 현장에서 벌레를 만나다
법의곤충학자 – 죽음의 현장에서 벌레를 만나다


“시체 주변에서 날아다니는 파리 한 마리가, 죽음의 시점을 정확히 말해줄 수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 속 범죄 현장에서 흔히 보는 장면은 시체 위로 날아다니는 벌레들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혐오의 이미지’로 받아들이지만, 법의곤충학자(Forensic Entomologist)에겐 그것이 증거다.
벌레는 냄새와 온도, 부패 과정에 따라 정해진 순서로 시체에 도착한다. 그 순서를 정확히 분석하면 사망 시점, 장소, 이동 여부, 은폐 정황까지도 알 수 있다.

나는 법의곤충학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세원 박사(가명)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지금도 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수사 자문을 맡고 있으며, 부검실과 현장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현장을 보면 피해자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옆의 곤충들부터 봐요. 파리의 종류, 유충의 크기, 위치, 탈피 흔적… 이 작은 것들이 시간이 멈춰 있던 단서를 다시 움직이게 하죠.”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사망 후 몇 시간, 몇 일째인지는 유충(구더기)의 성장 상태로 비교적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또 어떤 종류의 파리가 먼저 시체에 접근했는지를 통해, 시체가 실내에 있었는지, 외부로 옮겨졌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혐오를 넘은 정밀과학의 세계

“죽음은 흔적을 남기고, 곤충은 그 흔적을 먹고 자랍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죽음을 해석할 수 있죠.”

이 박사의 연구실엔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 펼쳐져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파리 유충과 성충, 모의 실험용 동물 사체, 그리고 온도·습도를 조절한 성장 실험기까지.
그녀는 매년 수십 건의 실제 사건을 분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실험실에서 곤충의 ‘사체 접근 패턴’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듣기엔 좀 징그럽겠지만, 전 유충이 정말 예뻐요. 투명한 몸에서 자라는 형태, 성장 곡선, 환경에 따른 민감성… 이건 생물학이자, 정밀한 시간의 과학이에요.”

실제로 그녀가 자문한 한 사건은, 시신이 야산에서 발견됐으나 사망 시점이 애매했던 의문사였다.
“그 시신 위에 존재했던 곤충 유충의 성장 단계를 역산한 결과, 사망 후 최소 9일이 경과했음을 입증했어요. 그런데 가족은 실종신고를 5일 전에 했죠. 결국 범인이 다른 장소에서 살해하고 시체를 이송한 걸로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법의곤충학은 단순히 시체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타임라인’을 통해 죽음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은 때론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가 되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로 인해 강력한 신뢰를 얻는다.

 

파리 한 마리로 밝혀진 진실들

이세원 박사는 국내 주요 강력사건에도 다수 참여해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몇 년 전 있었던 아동 유기 사망사건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시점에서 유기 후 사망까지 얼마나 시간이 있었는지를 특정해야 했어요. 말 그대로 파리의 생장 주기, 온도 변화, 시간차를 계산해 사망 추정 시각을 좁혀갔죠. 결국 그 정보가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유기 시점과 범인의 알리바이가 어긋난 걸 입증했습니다.”

그녀는 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시신을 보며 감정적으로 무뎌질 법도 하지만, 곤충과의 대화는 늘 새로운 통찰을 준다고 말한다.
죽음은 고요하지만, 그 곁의 생명은 활발히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집 안에서 사망한 독거노인의 사건이었어요.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지만, 방안에서 숲에서만 볼 수 있는 특정 파리가 발견됐어요. 알고 보니 사망 직전 외부에서 누군가와 마찰이 있었고, 그 시점에 이미 부패가 진행됐다는 걸 입증할 수 있었죠.”

법의곤충학은 아직 한국에서는 전공자도 적고, 실무에 투입되는 인원도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엔 과학수사 기반이 탄탄해지며 관련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 박사는 후학을 양성하며, 국내에서 이 분야가 ‘법의학의 표준 기술’로 자리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고요한 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끝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들이 시작을 알린다. 법의곤충학자는 그 작은 생명의 움직임을 읽고, 죽음의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혐오와 편견을 넘어서, 생명과학과 수사의 경계를 잇는 이들.

죽음은 침묵하지만, 곤충은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 덕분에 진실은 다시 빛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