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이 끝나도, 기록은 진실을 말한다” 오늘은 ' 항공기 블랙박스 분석가 – 추락의 진실을 20초 안에서 찾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 순간’을 복원하는 사람들
비행기가 추락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블랙박스를 찾으라고 외친다.
하지만 블랙박스는 단순히 ‘검은 상자’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 개의 센서 데이터, 조종사의 음성 기록, 엔진 상태, 고도 변화, 조작 흐름이 담긴 거대한 증언의 집합체다.
그리고 그 복잡한 정보를 해석해 사고의 진실을 복원하는 전문가가 있다. 바로 항공기 블랙박스 분석가다.
나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산하 항공사고조사위원회에서 근무 중인 김도영 선임 분석관(가명)을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 40여 건의 항공사고, 준사고 분석에 참여했으며, 20초의 기록을 분석하기 위해 수개월을 매달리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조종석 음성기록 중, 조종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6초 정적이 핵심이었던 적이 있어요. 그 침묵이야말로 기체 이상을 느끼고 당황했던 순간이었죠.”
블랙박스 분석은 단순히 파일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1초 1초를 수천 개의 데이터와 함께 대조하며 해석하는 일이다. 이 분석이 정확해야, 책임 소재, 기술적 결함, 조종 실수, 기체 이상 여부가 명확히 구분된다.
블랙박스 속 수천 개의 목소리
블랙박스는 주로 두 가지 장치로 구성된다.
CVR(Cockpit Voice Recorder): 조종석 음성과 주변 소음
FDR(Flight Data Recorder): 비행 중 발생한 모든 기체 관련 데이터
“CVR은 사람이 직접 듣고 분석합니다. 조종사의 말투, 숨소리, 버튼음, 외부 소음까지 다 기록돼요.
FDR은 엔진 회전수, 플랩 각도, 연료량, 랜딩기어 상태 등 300~1000여 개 데이터를 초 단위로 기록하죠.”
김 분석관은 하루에도 수백 번의 재생과 정지를 반복하며, 마치 퍼즐을 맞추듯 사고를 복원해나간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기계적 결함과 조종 실수 사이의 경계를 판단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기체가 갑자기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면, 그것이 기계 이상 때문인지, 조종사가 실수한 것인지, 기상 현상 때문인지를 데이터 조합으로 풀어야 한다.
“단 5초의 고도 변화가, 사고의 방향을 완전히 바꿉니다.
그 순간 조종사는 무엇을 했는지, 기체는 어떤 반응을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3개월을 분석한 적도 있어요.”
이 과정엔 항공기 구조에 대한 이해, 비행 원리, 소리 분석, 데이터 해석, 통계적 추정 능력이 모두 요구된다.
또한 결과는 단순 보고서가 아닌 국제 공용의 기술 문서로 작성되며, ICAO(국제민간항공기구)에 제출될 수도 있다.
사고의 책임은 진실을 통해 나눈다
김 분석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몇 년 전 국내 공항에서 발생한 착륙 중 활주로 이탈 사고였다.
탑승객은 모두 무사했지만, 비행기는 크게 손상되었고 원인에 대한 공방이 거셌다.
“조종사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블랙박스 데이터엔 브레이크 신호가 정상적으로 전달된 기록이 있었어요. 대신, 활주로 표면이 젖어 있는 조건에서 자동 제동이 해제되는 알고리즘의 미세한 결함이 있었죠.”
이 결과는 단순히 한 조종사의 명예를 지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항공사의 매뉴얼이 수정되고, 동종 기종의 운영 매뉴얼 전면 재점검이 이루어졌다.
즉, 블랙박스 분석은 단순히 과거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술적 예방장치이기도 하다.
김 분석관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누구 잘못이냐’보다, ‘어떻게 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그 답은 항상 기록 안에 있어요. 그걸 찾는 게 저희 일이죠.”
그는 업무의 특성상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사건에도 많이 참여한다. 종종 공항 근처 드론 충돌, 관제실 착오, 악천후 회항 등도 분석 대상이 된다.
“일이 조용하면 좋지만, 그건 항공 사고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제 직업은, 바빠질수록 세상이 더 위험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비행기는 하늘 위의 기계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인간의 판단과 기술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실패했을 때,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열쇠는 ‘기록’이다.
항공기 블랙박스 분석가는 조용한 과학자다. 그들은 재난의 끝에서 목소리를 듣고, 데이터를 읽고, 그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20초의 데이터가 밝혀낸 수많은 생명의 무게, 그 무게를 매일 견디며 일하는 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