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먼저 감각되는 디자인이 있다. 바로 소리이다. 오늘은 ' 풍경 음향 디자이너 – 소리로 공간의 감정을 설계하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 들리는 감정
카페 문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은은한 재즈,
고요한 미술관 안에서 퍼지는 잔잔한 클래식,
브랜드 쇼룸에 들어서는 순간 감도는 몽환적인 앰비언트 사운드.
이런 ‘소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우리의 무의식에 작용해 공간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행동을 유도하거나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런 소리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직업이 바로
‘풍경 음향 디자이너(Soundscape Designer)’다.
나는 오늘 서울 성수동의 한 전시 공간에서
이 직업을 가진 김지후 씨(가명)를 만났다.
그는 현재 공간 디자인 회사에서 ‘환경음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눈으로 보이는 디자인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소리는 감정을 흔들어요.
한 공간을 ‘기억에 남게 만드는 힘’이 소리에 있거든요.”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풍경 음향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그 공간의 인상을 강하게 떠올린다.
그런 의미에서 풍경 음향은 ‘보이지 않는 브랜딩’이라 불릴 만하다.
매장, 병원, 전시장까지… 소리로 설계되는 공간
김지후 씨는 지금까지 다양한 공간의 소리를 설계해왔다.
그가 보여준 포트폴리오에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 쇼룸,
병원 대기실, 미디어 아트 전시, 백화점 팝업스토어, 심지어 어린이 치과까지 있었다.
“소리 디자인은 장소와 목적, 그리고 ‘그곳에 오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 병원: 긴장 완화
진료를 기다리는 공간에는 높은 주파수를 억제한 저음의 앰비언트 사운드를 활용했다.
초조함을 줄이고, 맥박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 백화점 매장: 체류 유도
특정 브랜드 매장에서는 베이스 리듬이 살짝 있는 음악을 깔아
방문객이 더 오래 머물도록 유도한다.
흥미롭게도, 사운드를 바꾼 후 체류 시간이 평균 8분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 전시 공간: 몰입 연출
전시의 콘셉트에 맞는 소리 디자인은
관람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가령 바다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는
‘정적에 가까운 파도 소리’를 설치해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을 구현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소리는 공간의 ‘숨결’이에요.
사람이 눈으로 보는 순간보다 먼저, 귀로 반응하거든요.”
풍경 음향 디자이너가 되는 법
이 직업은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하다.
전문학과나 자격증은 존재하지 않지만,
음향 공학, 사운드 디자인, 음악학, 공간디자인, 심리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이 분야에 진입하고 있다.
김지후 씨는 원래 작곡을 전공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 직업을 택했다.
“풍경 음향 디자이너는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공간의 목적, 방문자의 심리, 브랜드 정체성까지 고려해야 하죠.
일종의 감정 설계자라고 생각해요.”
그가 들려준 장비 리스트는 전문적이다.
고해상도 마이크, 서라운드 음향 편집 프로그램,
위치 기반 스피커 시스템, 실시간 음향 반응 장치까지.
또한, 이 직업은 단순히 음악이 아닌, ‘환경음(ambient sound)’이나
‘비가청 주파수(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뇌에 영향을 주는 소리)’ 등을 다루기도 한다.
때로는 침묵조차도 디자인의 일부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풍경 음향 디자이너는 말합니다.
“사람은 눈보다 귀로 먼저 공간에 반응합니다.
소리는 배경이 아니라, 공간의 첫인상이죠.”
누군가는 조용한 미술관에서 소리를 설계하고,
누군가는 치과의 공포를 소리로 낮추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브랜드의 감정을 파동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디자인,
그것이 풍경 음향 디자이너의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