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밖에서 필름 안을 지키는 직업이 있다. 오늘은 '영화 소품 복원가 – 시간 속 영화의 기억을 되살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는 끝났지만, 소품은 살아 있다
“영화가 끝나도, 소품은 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에요.”
나는 서울 외곽의 한 영화 소품 보존실에서 영화 소품 복원가 이다영(가명) 씨를 만났다. 그녀는 17년간 영화 및 방송 촬영에서 사용된 소품들을 수집하고, 복원하고,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일을 해왔다.
‘소품 복원’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직업은 영화의 예술성과 역사성을 보존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다.
촬영장에서 수없이 사용된 물건들 – 찢어진 의상, 색 바랜 간판, 깨진 소품들. 일반인이라면 그냥 폐기했을 그 물건들이, 복원가의 손에선 ‘기억’으로 바뀐다.
그녀는 말했다. “한 컷에 스쳐 지나간 물건도 관객에겐 오래 기억되는 영화의 조각이 될 수 있어요. 그 장면을 기억하게 해주는 건 배우가 아니라 소품일 수도 있죠.”
최근엔 OTT 드라마와 대작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과거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적 배경이 등장한다. 자연히 고증과 복원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 일은 여전히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다.
먼지, 균열, 기록 – 기억을 수선하는 기술
소품 복원가의 하루는 매우 아날로그하다. 보존실은 마치 미술관 뒷방 같았고, 곳곳엔 낡은 트렁크, 녹슨 철제 간판, 오래된 기차표, 타자기, 사기 그릇 같은 것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언뜻 보면 골동품 가게 같지만, 이 모든 물건은 스크린 위를 스쳐간 ‘배우’들이었다.
“이건 2002년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실제 사용한 야구 글러브예요. 지금은 가죽이 굳어서 그대로 두면 갈라져요. 가죽 전용 보습제를 바르고, 주기적으로 온·습도를 조절해야 하죠.”
복원은 단순히 '수리'가 아니다. 기록에 근거한 ‘재현’이다. 그녀는 복원 작업 전에 반드시 영화 속 장면을 수십 번 돌려본다고 했다. 장면 속 색감, 질감, 닳은 정도까지 고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장 오래 복원에 매달렸던 소품은 1980년대 경찰서 세트에서 사용된 철제 표지판이었다. “페인트가 거의 벗겨졌는데, 그냥 덧칠하면 영화 느낌이 살지 않아요. 당시 붓 터치 방식, 색 바램 정도까지 재현했죠.”
심지어 이들은 복원 후 전시용으로 가공할 때도 ‘기억의 맥락’을 고려해 디스플레이 위치, 조명각도까지 신경 쓴다.
이 직업은 영화와 예술, 역사, 공예 기술이 모두 혼합된 종합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하나뿐인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들
“소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에요. 시간을 담고 있고, 감정을 저장하죠.”
영화 소품 복원가는 단순한 기술직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되살리는 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를 것을, 스스로 먼저 존중하는 일이다. 그만큼 정성, 인내, 애정이 필요한 직업이다.
이 씨는 한 번은 오래된 드라마 세트에서 꺼낸 인형 하나를 복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인형은 특정 장면에서 주인공이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는 소중한 매개체였다. “그 인형 하나를 보면서 펑펑 우는 관객들이 있었어요. 화면에선 5초 나왔는데, 그 기억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몇 주를 들였죠.”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들은 작업물을 창고에만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엔 테마 전시, 박물관 협업, 촬영 세트 재현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활용되고 있다. 복원가는 일종의 문화 아카이빙 전문가인 셈이다.
나는 물었다. “이 일이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않는 것, 아쉽진 않으세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조명이 꺼진 후에도, 기억은 남잖아요.”
우리는 종종 배우와 감독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 장면은, 찢어진 소품 하나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 사소한 물건이 완성한 감정의 파동을 누군가는 조용히 복원하고 있다. 영화 소품 복원가 – 가장 조용한, 그러나 가장 깊은 영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