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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부검 전문가 – 죽은 동물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by 반짝달육 2025. 5. 18.

생명의 끝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직업이 있다. 오늘은 '동물 부검 전문가 – 죽은 동물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동물 부검 전문가 – 죽은 동물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동물 부검 전문가 – 죽은 동물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생명이 떠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죽은 동물은 말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대신 찾아야 해요.”

동물 부검 전문가, 정확히는 수의 법의학자라 불리는 이 직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동물 병원에서는 아픈 동물을 치료하지만, 이들은 이미 죽은 동물의 사인을 밝혀내는 일을 한다.
나는 국내 한 수의대 법의학 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윤진수(가명) 수의사와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실험복을 입고, 해부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작은 동물의 사체를 올려놓았다. 냉장 보관된 동물의 몸은 조용했고, 윤 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친구는 보호자가 계속된 경련으로 병원에 데려왔지만 끝내 숨졌어요. 혹시 중독이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하죠.”

수의 법의학은 ‘범죄’를 다루기도 한다. 학대나 방치, 불법 약물 사용, 의료 과실, 환경 독성 등…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에게도 ‘진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윤 씨는 말한다. “동물은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요. 죽은 후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우리는 작은 흔적 하나로 그 고통의 과정을 추론해야 해요. 때로는 법정에서 증언도 하죠.”

 

부검은 단순한 해부가 아니다

윤 씨는 동물 부검을 ‘사후 진료’라 표현했다. 살아 있는 동안 밝혀내지 못한 질병, 원인 모를 증상, 의심스러운 죽음의 흔적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것이다.

“먼저 외부 상처와 피부 상태, 체중 등을 관찰하고, 그 다음엔 장기 상태, 출혈 흔적, 위 내용물까지 다 살펴봅니다. 때로는 조직을 슬라이드로 잘라 현미경으로도 봐야 하죠.”

동물 부검은 대상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반려견, 고양이처럼 사람과 가까운 동물 외에도, 조류, 파충류, 야생동물 등 다양한 종을 다룰 때는 해부학적 지식이 훨씬 더 복잡해진다.

그는 한 번은 길고양이 사체에서 의심스러운 두개골 골절을 발견해 학대 정황을 경찰에 제공한 적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새벽 3시에 들어온 대형견의 사체를 부검해 수의사의 약물 과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건 한 유기견이었어요. 보호소에서 죽었는데, 그냥 지병으로 알고 넘길 수도 있었죠. 근데 폐 안에 심한 출혈이 있었고, 우리가 조사해서 유해한 소독제가 과다 분사된 게 원인임을 밝혔어요. 그 뒤로 보호소 관리 방식이 바뀌었죠.”

단순한 해부가 아닌 생명과 시스템을 지키는 작업이 바로 이 직업의 본질이다.

 

생명 앞에 진지했던 사람들의 마지막 직업

수의 법의학자는 단순한 ‘죽음의 기록자’가 아니다. 이들은 생명의 흔적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윤 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작은 몸뚱이를 해부대에 올려놓고 내장을 꺼내고,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보고서를 쓴다.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작고 여린 동물들을 해부하는 게 죄책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 일이 없으면 고통받는 다른 동물들이 계속 생길 수도 있어요. 진실을 밝히는 건 그 친구에게 주는 마지막 예의예요.”

그는 동물 사망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보호자들도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부검 결과를 듣고 울면서 말했어요. ‘이제야 그 애가 왜 아팠는지 알겠다’고요. 그 한 마디가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들죠.”

또한 그는 수의사들의 의료 책임 강화, 학대 사건의 법적 판결, 사육 환경 개선 등에도 부검 결과가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데서 사회를 조금씩 바꾸는 직업, 바로 그것이 수의 법의학자의 역할이다.

 

 

동물 부검 전문가는 죽은 동물의 몸에서 삶의 메시지를 꺼낸다. 그들이 말하지 못한 고통을 읽고, 밝혀내고, 전달한다. 생명이 사라진 곳에서 다시 생명을 지키는 일. 차가운 해부대 위에서, 그들은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죽음을 대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