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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인형 복원가 –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by 반짝달육 2025. 5. 19.

낡고 닳은 인형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전통 인형 복원가 –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전통 인형 복원가 –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전통 인형 복원가 –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는 손길

 

낡은 인형에 담긴 시간의 이야기

“이 인형은 70년 전 아이가 생일 선물로 받았대요. 지금은 주름진 손을 가진 그 아이가 다시 저를 찾아왔죠.”

서울 인사동의 작은 복원 공방. 벽에는 오래된 나무 인형, 자수 인형, 한지로 만들어진 탈 인형, 심지어 일제강점기 유물로 분류된 일본식 곰 인형까지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전통 인형 복원가 박진화(가명) 씨는 20년 넘게 수명을 다한 인형을 다시 살려내는 일을 해왔다.

인형 복원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다. 특히 전통 인형의 경우, 문화적 가치와 정서적 연결감이 매우 크다. 어떤 인형은 대를 물려 소중히 간직되어 왔고, 어떤 인형은 전통 혼례식에서 쓰인 상징물일 수도 있다.
“이건 그냥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이고 가족이고, 역사예요.”

복원은 소재부터 출발한다. 오래된 천은 이미 섬유조직이 약해져 있고, 나무는 뒤틀리고 갈라져 있다. 박 씨는 이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면서도 현대적 보강 작업을 병행한다.
“예전엔 집에서 한복 짓던 어머니 옆에서 인형 옷도 같이 만들곤 했죠. 그 기억이 지금 제 일을 이끌고 있어요.”

 

바늘과 붓으로 기억을 꿰매다

복원 작업은 인내의 연속이다. 손바느질로 수십 년 전 방식의 인형 옷을 다시 꿰매고, 인형의 눈동자를 수작업으로 칠하고, 때로는 손상된 관절을 목공 기술로 보수하기도 한다.

“이 인형은 1940년대에 만들어졌어요. 손에 든 태극기가 사라졌길래, 당시 태극기 도안을 찾아 그 크기와 색감까지 복원했죠. 붓끝이 닳도록 그렸어요.”

박 씨의 작업은 단순히 외관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 그 시대와 사람의 이야기를 되살리는 과정이다.
한 번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조선 인형을 들고 온 할머니가 있었다. 인형의 한쪽 팔이 떨어져 있었고, 옷도 해어져 있었다. 박 씨는 수주 동안 원단 샘플을 뒤지고, 오래된 사진 자료를 참고해 원래 모습에 가깝게 되살려냈다.
“완성된 인형을 받아든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이 인형을 안고 있던 딸이 이제는 손녀를 낳았어요’라며요.”

복원가는 단지 손재주가 좋은 장인이 아니다. 기억의 큐레이터이자 정서의 치유자다. 그는 말한다.
“가끔은 심리 상담사 같기도 해요. 어떤 분들은 인형 하나를 고치며 인생을 정리하기도 하니까요.”

 

사라지는 전통, 잊히는 기술

전통 인형 복원가는 한국에서도 극히 드문 직업이다. 관련 학과도 없고, 전통 인형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독학이거나, 오래된 자료를 바탕으로 손과 감각에 의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디지털로 뭐든 다 만들 수 있지만, 그 시대의 질감과 정서는 복원이 아니면 느낄 수 없어요. 특히 사람 손으로 만든 인형은 그 손길의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문제는 후계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복원 작업은 긴 시간, 높은 집중력, 역사적 감각까지 요구하지만 경제적 보상은 크지 않다.
“젊은 사람들에겐 너무 느리고 돈도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잃어버린 유년을 다시 꿰매는 건, 누구나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박 씨는 최근엔 박물관 의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가 감옥에서 만든 작은 헝겊 인형, 6.25 전쟁 당시 포탄 파편을 피해 모은 민속 인형까지… 복원은 단지 손재주가 아닌 역사 보존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복원이 끝나면 인형을 마주보며 속으로 말해요. ‘이제 다시 오래 살아도 좋아요’라고요.”

 

 

전통 인형 복원가는 기억을 수선하는 사람이다. 사라진 문화, 잊혀진 손길, 낡은 추억을 한 땀 한 땀 다시 살린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깊이 남는 직업. 그들의 손끝은 오늘도, 시간의 파편을 꿰매고 있다.